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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오늘

역사 속 오늘, 4월 10일: 74년 전, 대한민국 최초의 전투함 백두산함 도입

해양맨 2024. 4. 10. 00:00

역사 속 오늘, 4월 10일에 일어난 일:

1885년 - 대한민국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광혜원이 왕립 병원으로 개원했다.
1950년 - 대한민국 최초의 함정인 백두산함이 국내에 들어왔다.
2008년 - 쿠바의 라울 카스트로 정부 임금상한제 폐기.
2010년 - 러시아 서부에서 폴란드의 레흐 카친스키 대통령과 영부인 등 132명이 탑승한 항공기 추락, 탑승자 전원 사망.

 

오늘의 묵상: 대한민국 최초의 전투함 백두산함

1950년 4월 10일, 74년 전 오늘, 대한민국 최초의 전투함정인 백두산함이 실전 배치됐습니다.

 

광복 3년 뒤인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대한민국 국군이 창설되었으나 해군에는 변변한 함정이 한 척도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손원일 제독이 일본이 버리고 간 어뢰운반선을 경비정으로 개조한 '충무공함'이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이 배로선 기껏해야 해상 영토를 넘어온 일본 어선이나 나포하고 밀매선을 단속하는 경비정 수준이었습니다. 창군 직후 미 해군이 넘겨준 배들도 모두 전투함이 아닌 소해정과 상륙정 등 직접적인 해전에 부적합한 함선들이었습니다. 그나마도 포가 부족해 출동 나가는 배들끼리 포를 옮겨 실어가며 돌려 쓸 정도였습니다.

결국 손원일 제독은 함정 구매를 위해 함정건조 모금운동을 전개하기로 했습니다. 해군과 해군부인회의 모금운동이 국민들에게까지 확산되어 넉 달 만에 1만 5천 달러를 마련할 수 있었고, 이승만 정부가 예산 4만 5천 달러를 지원했습니다. 이 돈으로 미국에 간 손 제독은, 대한민국 최초의 전투함인 PC-701 백두산함을 구입하고, 추가로 PC-702 금강산함, PC-703 삼각산함, PC-704 지리산함 3대를 더 구입하게 됩니다.

 

대한민국 최초의 전투함인 PC-701 백두산함.

 

그런데 이런 눈물겨운 고생을 하며 얻어온 함 자체는 미국에서도 그냥 처분하려던 함정이었습니다. 이 함종은 2차 대전 당시 무려 343척이나 급조했던, 미국 해안 정찰이나 연안초계정급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구입한 군함은 1949년 12월 26일 태극기를 게양하고 대한민국 해군의 첫 전투함이 되었습니다. 배의 이름은 손원일 제독이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에서 따와서 '백두산함'이라 손수 명명했는데 공교롭게도 미국에서의 이름도 '화이트헤드(White Head)', 즉 '백두(白頭)'였습니다.

 

백두산함은 이렇게 대한민국 함선으로 편입되었고, 미국 현지에서 한국 승조원들이 배에서 먹고 자면서 손수 고치고, 함수에 3인치 포를 장착하였습니다. 미국을 떠난 백두산함이 1950년 4월 10일 진해에 입항하였을 때 국민들이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환영했습니다.

 

백두산함은 한국전쟁 당시 부산에 기습 침투하려는 북한의 함선을 격퇴하는 등 그 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다. 백두산함이 없었더라면 낙동강 전선이 무너졌을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6.25 전쟁 이후 미군이 더 좋은 군함을 여러 지원하면서 백두산함은 후방 경계근무로 밀려났다가 1959년 7월 1일 퇴역하고 1960년 8월 21일 해체되었습니다. 다만 돛대 부분은 보존되어 해군사관학교에 등록문화재로 지정-전시되어 있습니다. 

 

해군사관학교에 전시 중인 백두산함의 마스트.

 

'대한민국 해군의 아버지' 손원일 제독은 1953년 6월 해군 중장으로 예편한 뒤, 그 해 8월 제5대 국방부장관으로 취임하였습니다. 해군에서는 장보고·이순신과 함께 추앙받는 '3대 제독의 1인'으로 꼽힙니다. 대한민국 해군은 그의 공적을 기려 2006년에 도입한 214급 잠수함의 이름을 손원일급으로 명명하고, 경남 창원시에 위치한 해군 진해기지 사령부 영내에는 손원일 제독의 동상이 있습니다.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 손원일 제독(오른쪽에서 두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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