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오늘, 6월 9일에 일어난 일:
1863년 - 미국 남북전쟁 중 게티즈버그 전역: 브랜디 역 전투
1942년 - 체코슬로바키아의 리데체,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의 암살에 대한 보복으로 파괴되다.
1983년 - 단식 농성을 벌이던 김영삼이 건강악화로 단식농성을 21일 만에 종료하였다.
1987년 - 연세대학교 학생 이한열이 시위 도중 최루탄을 맞고 쓰러졌다.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1991년 - 필리핀 피나투보 화산 폭발로 140여 명 사망.
오늘의 묵상: 이한열과 6월 항쟁
1987년 6월 9일, 37년 전 오늘, 연세대학교 학생 이한열이 시위 도중 전경이 쏜 최루탄을 머리에 맞고 한 달 동안 사경을 헤매다가 7월 5일 만 20세의 나이에 요절했습니다. 이 사건은 6월 항쟁과 6.29 선언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이한열은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2학년 재학 당시,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6월 9일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가 개최하기로 한 ‘박종철 군 고문살인 은폐조작 규탄 및 민주헌법쟁취 국민대회’를 하루 앞두고 열린 ‘6·10 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에서 전경이 쏜 최루탄을 맞고 피를 흘리며 쓰러졌습니다.
수사 과정을 거쳐 검찰은 최루탄 사고 당시 SY44탄을 발사한 전경이 「최루탄 취급 요령」이라는 경찰교범에 나오는 안전 사각 35~45도를 어기고 발사각도를 낮춰 쏨으로써 이한열을 사망케 했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그러나 현장 지휘를 맡았던 서장, 중대장, 소대장 등 경찰 간부들에 대해서는 직무유기의 증거를 찾아볼 수 없다며 무혐의로 불기소 처분하였습니다. 총류탄을 발사해 이한열을 사망에 이르게 한 당사자는 특정하지 못하였고, 서울지방검찰청은 1987년 8월 3일 불상의 전경대원을 살인죄로 기소중지 처분하였습니다.
이 사건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함께 전두환 정권의 잔인성에 대해 전 국민적인 분노를 이끌어 내었고 6월 항쟁이 걷잡을 수 없이 격해지며 결국 군사정권의 항복 선언인 6.29 선언을 이끌어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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