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오늘, 6월 8일에 일어난 일:
기원전 57년 - 진한 땅에서 신라의 모체인 사로국(신라)이 건국되었다.
1945년 - 친일 단체인 조선 언론 보국회(회장 최린) 결성.
1948년 - 미군기, 독도 부근서 폭격 훈련 중 한국 어선 23척 오폭으로 16명 사망.
1953년 - 휴전 회담 본회의, 포로 교환 협정 조인.
2008년 - 일본에서 아키하바라 무차별 살상사건으로 7명 사망, 10명 중경상.
오늘의 묵상: 미군의 독도 인근 어선 폭격 사건
1948년 6월 8일, 76년 전 오늘, 미군기가 독도 부근서 폭격 훈련 중에 한국 어선 23척을 오폭하여 16명이 사망했습니다.
미군정기인 1948년 6월 8일, 미 공군기가 독도에서 고기잡이하던 어부들에게 폭탄을 퍼부어 떼죽음을 당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역사는 이것을 '독도 오폭사건'이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단순한 실수였는지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당시 언론에서는 아래와 같이 보도했습니다 (동아일보 1948년 6월 14일, 17일).
“미국 극동함대 사령부가 독도 폭격이 고공폭격 연습대에 의한 것이라고 공식 인정했다. 이 성명서는 11척의 조선 어선을 총·폭격하여 14명의 조선인을 살해하고 기타를 부상시켰다고 전해진 이 사건을 불행한 유감스러운 사고라고 말한다.”
당시 피해자의 숫자 등 폭격의 실상이 상당 부분 숨겨져 있는 것으로 드러났는데, 생존자와 유가족의 증언을 종합해 본 결과폭격사건으로 피해를 입은 어민은 무려 15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었습니다. 생존자 2명은 “울릉도 방향에서 날아온 12대의 폭격기가 2개 조로 나눠 600m 상공에서 선회하며 융단폭격, 조업현장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30여 척의 동력선에 척당 5~8명이 타고 있었으니까 150여 명 정도가 숨졌다고 보면 될 것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미군정은 사건발생 8일이 지나도록 폭격사실 등을 부인하다가 미 공군 극동사령부를 통해 미 제5공군 소속 B29폭격기가 어선들을 바위로 오인해 연습폭격을 했다고 발표했을 뿐 진상을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 이후에도 독도는 1953년 1월까지 미 공군의 폭격연습장으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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