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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오늘

역사 속 오늘, 6월 11일: 130년 전, 동학군의 전주화약과 폐정개혁안

해양맨 2024. 6. 11. 00:00

역사 속 오늘, 6월 11일에 일어난 일: 

1894년 - 동학농민운동: 동학농민군과 정부가 전주 화약을 맺다.
2003년 - 예루살렘에서 자살 폭탄 테러로 17명이 사망했다.
2008년 - 수단에서 에어버스 A310 여객기가 추락하여 30여 명이 사망하였다.
2010년 - 키르기스계와 우즈베키스탄계 간의 민족 분규로 최소 37명 사망, 500여 명 부상.
2011년 - 북한 주민 9명이 소형 선박을 타고 서해 우도 해상으로 귀순.
2012년 - 아프가니스탄에서 진도 5.7의 지진이 발생하여 최소 71명이 사망하다.

오늘의 묵상: 동학군의 전주화약과 폐정개혁안

1894년 6월 11일, 130년 전 오늘, 동학농민군과 조선 정부 사이에 전주 화약이 체결되었습니다.

 

전주화약은 1894년(갑오년) 조선중앙정부가 동학농민군의 요구조건을 들어주겠다고 회유해 맺은 조약입니다. 동학 농민 운동 중 농민들이 황토현전투에서 관군을 격퇴하고 북상하였습니다. 이후 관군을 격퇴하고 전주성을 점령하는 중에 조선의 요청으로 청나라군대가 파견되자 일본도 재빨리 거류민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군대를 인천으로 보내 개입하니 이에 조선중앙정부의 회유로 전주에서 강화를 체결하고 폐정개혁안을 약속함에 따라 동학군이 해산했습니다.

동학농민군 해산 후 조선중앙정부는 중앙에 교정청을 농민들은 각 고을에 자치기구인 집강소를 설치하여 폐정개혁에 착수하였습니다. 조선중앙정부는 난이 평정되었다는 사실을 청일 양국에 알리고 철수할 것을 요청하였으나, 조선에서의 사태를 재침약의 계기로 이용하려 한 일본은 오히려 한양을 군대로 포위한 상태에서 조선정부에 대하여 내정개혁을 강요하는 한편 청에 대해서도 협조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이때 청은 일본의 요구가 조선에서의 세력을 확대를 꾀하려는 것임을 간파하여 이를 거절하고 공동철병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전쟁을 도발하여서라도 청의 세력을 조선으로부터 몰아내고 자기들의 주장을 관철시키려 하였다. 마침내 일본군은 경복궁을 침범(갑오왜란) 명성황후 민 씨 정권을 몰아내고 흥선대원군을 떠받들어 내정개혁을 강요하는 갑오개혁을 간섭하였습니다.

 

한편 청에 대하여 전쟁을 도발하여 청일 전쟁이 발발하자 농민들은 일본군 타도를 내세우며 다시 봉기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공주 우금치 전투에서 농민군의 패배, 태인 전투의 패배로 지도자 격인 전봉준이 1894년 12월 28일 체포되었습니다. 비록 동학 농민 운동이 좌절되었으나 전주화약을 계기로 갑오개혁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역사적 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폐정개혁안 12개 조의 내용

  1. 동학교도와 정부는 쌓인 원한을 씻고 서정에 협력한다.
  2. 탐관오리는 그 죄목을 조사하여 엄징한다.
  3. 횡포한 부호를 엄징한다.
  4. 불량한 유림과 양반의 무리를 징벌한다.
  5. 노비문서는 소각한다.
  6. 七班賤人(칠반천인)의 차별을 개선하고 백정의 平凉笠(평량갓)을 없앤다. <아래 참조>
  7. 청상과부는 개가를 허용한다.
  8. 무명의 잡세는 일체 폐지한다.
  9. 관리채용은 지벌을 타파하고 인재를 등용한다.
  10. 倭(왜)와 내통하는 자는 엄징한다.
  11. 공사채를 막론하고 기왕의 것을 무효로 한다.
  12. 토지는 평균하여 분작한다.

 

평량갓 혹은 패랭이는 조선시대 천인 계급이나 상제(喪制)가 쓰던 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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