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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오늘

역사 속 오늘, 6월 20일: 43년 전, 삼청교육대 감호생 전정배 의문사

해양맨 2024. 6. 20. 00:00

역사 속 오늘, 6월 20일에 일어난 일: 

1791년 - 프랑스혁명: 루이 16세와 왕실일가들이 파리 튈르리 왕궁을 탈출하여 해외 망명시도하다.

1837년 - 빅토리아 여왕이 대영제국의 여제로 즉위했다.

1908년 - 중앙고등학교의 모태인 기호학교가 한성부 소격동에서 개교했다.

1981년 - 삼청 교육대에 끌려가 육군 5사단에서 교육을 받던 전정배 총상 사망(전정배 의문사 사건).

 

오늘의 묵상: 삼청교육대와 전정배 의문사

1981년 6월 20일, 43년 전 오늘, 삼청 교육대에 끌려가 육군 5사단에서 교육을 받던 전정배가 총상으로 사망하는 전정배 의문사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삼청교육은 80년 8월 4일 국가보위비상대책위 전두환 상임위원장의 '사회악 일소 특별조치' 발표와 '삼청 5호 계획'이란 이름 아래 진행됐습니다. 명칭은 국보위 사무실이 위치한 삼청동에서 비롯됐다고 합니다.

이때 검거된 사람은 모두 6만 명이 넘었고, 그중 3만 9786명이 25개 군부대에 분산 수용돼 이른바 '순화교육'을 받았습니다. 또한 불법 체포와 구금, 강제노역과 구타, 살인 등 극심한 인권침해로 부대 내 사망자 52명, 후유증으로 인한 사망자 397명, 정신장애 등의 피해를 겪는 상해자가 2678명에 이르는 것으로 국방부가 발표한 바 있습니다.

전정배는 1980년 8월 13일 부친과의 말다툼 과정에서 동대문구 이문파출소에 신고·연행되어 청량리경찰서로 이송된 후, 재판절차 없이 삼청교육대 분리심사위원회의 심사에서 B급 판정을 받고, 삼청교육대에 입소되어 순화교육을 받고 근로봉사를 하였습니다. 보호감호처분을 받고 사단 감호분소에 수용되던 중, 정식재판을 받게 해 줄 것 등 13개 항의 요구조건을 제시하며 집단 시위를 벌였습니다. 당시 감호생들은 아무런 재판도 받지 않았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끌려오다시피 삼청교육대에 강제 수용되었는데, 대부분 순화교육과 근로봉사만 마치면 집으로 보내 준다는 약속을 믿었으나 그것이 지켜지지 않음으로써 언제 풀려날지 모른다는 절망적인 심리상태에 빠져있었습니다.

 

전정배를 비롯한 감호생들은 삼청교육 입소의 부당성과 감호처분을 내린 것 자체의 부당성과 아울러 감호생에 대한 처우가 공정하지 못한 점을 누차 제기하였습니다. 그리고 감호생은 죄수가 아니므로 삭발시키지 말 것, 존칭을 사용해 줄 것 등 감호소 내에서의 처우개선과 인권존중을 요구하였습니다. 이러한 정당한 요구에 대해 군은 M16소총과 M60기관총을 발사하여 과잉진압, 6명에게 총상을 입혀 그중 전정배가 사망하였습니다.

 

의문사위원회는 "삼청교육대 운영이 공권력의 위법 행사인 만큼 전씨가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순화교육을 받고 강제노역에 해당하는 근로봉사를 한 것, 군 지휘관의 구타로 촉발된 감호생 집단시위 중 발포로 사망한 것 또한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로 보아야 한다"라고 밝혔습니다.

 

의문사위원회는 "전씨가 ▲ 집단시위 과정에서 재판 없는 삼청교육대 입소, 일정기간 교육 후 귀가시킨다는 약속 불이행, 불공정한 감호생 심사 등의 부당성에 대해 항의했고 ▲ 감호생에 대한 존칭 사용 등 처우개선과 인권존중을 요구한 점 ▲ 당시 감호생들의 시위는 위법한 권위주의적 통치에 항거한 행위로 보아야 한다"며 전 씨의 사망이 민주화 운동 관련성이 있다고 인정했습니다.

삼청교육대 입소교육자 전정배 사망 경위를 발표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대법원 판시를 근거로 "80년 5월 31일 국보위의 설치는 내란행위로 보아야 하며, 마찬가지로 국보위 사회정화분과위에서 추진한 삼청계획 5호 불량배 소탕계획과 계엄포고령 13호 역시 신군부의 폭동행위를 유지·강화시키기 위한 내란죄에 해당하는 행위로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로 보아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삼청교육의 발상 자체가 신군부의 취약한 정통성을 국민대중들에 대한 무차별 폭력으로 보완하려는 불순한 목적이 개입했기 때문에 5 공화국이 몰락한 후 6 공화국 정부 내에서도 삼청교육의 위법성을 인정했지만 삼청교육대로 인한 피해 및 희생자에 대한 보상이 제대로 이루어졌는지는 의문으로 남아있습니다.

 

삼청교육대의 '순화교육' 장면.

 

삼청교육대의 목봉체조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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