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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오늘

역사 속 오늘, 6월 24일: 244년 전, <열하일기>의 박지원 청나라 여정 시작

해양맨 2024. 6. 24. 00:00

역사 속 오늘, 6월 24일에 일어난 일: 

1780년 - <열하일기>의 저자 연암 박지원이 청나라로 5개월간의 여정을 떠나다.

1812년 - 나폴레옹 1세가 지휘하는 프랑스군이 러시아 제국령 폴란드 영토를 침공, 러시아 원정에 돌입
1947년 - 근대적인 개념의 첫 번째 UFO 발견 보고가 나온 날

1967년 - 경제기획원 통계국에 인구 통계용 컴퓨터가 도입된 날로 2018년부터 '전자정부의 날'로 법정 공휴일이 됨

1982년 - 영국항공기가 인도네시아 자바 섬 화산 분화로 인해 엔진고장이 났으나 자카르타 공항에 무사히 비상착륙

2002년 - 북한에서 중국으로 탈출한 26명의 탈북자가 중국에서 인천 국제공항 입국 (한중 외교 분쟁 성공리 해결)
2016년 - 영국의 유럽연합 잔류 여부 브렉시트 국민투표 결과 찬성 51.9%(반대 48.1%)로 탈퇴 확정

 

오늘의 묵상: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1780년 6월 24일(음력), 244년 전 오늘, <열하일기>를 지은 연암 박지원이 청나라로 5개월간의 여정을 떠났습니다.

 

「열하일기」는 조선 후기 북학파 학자인 연암 박지원이 청나라를 다녀온 후에 쓴 기행문입니다. 1780년(정조 4년) 청나라 건륭제가 고희를 맞아 조선에서 축하 사절단이 구성됐는데, 당시 박지원은 43세로 적지 않은 나이였지만 사신 행렬에 동행하게 되면서 청나라의 문물을 직접 경험하게 됩니다.


사신단의 여정은 육로로 압록강-선양-북경(연경) 까지가 원래의 행로였지만, 건륭제가 열하의 피서 산장에 있었기 때문에 결국 열하까지 여정이 계속됐으며, 이 때문에 「열하일기」라는 제목이 붙여졌습니다. 수 십 마리의 말과 조공품, 그리고 수백 명의 사신단이 33일 동안 2,000리를 걸어서 연경(지금의 북경)에 도착했지만, 다시 700리나 떨어져 있는 열하까지 가야 해서 추가로 8일을 더 이동하여 겨우 건륭제의 칠순잔치에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열하일기의 여정.

 

「열하일기」는 총 26권 10 책으로 구성되며 1~5 책은 여정 중심으로 작성돼 있고, 6~10 책은 청나라의 문물을 보고 들은 것을 바탕 삼아 주제별로 작성돼 있습니다.

그중 ‘관내정사(關內程史)’는 산하이관~북경에서의 기록으로, 단편소설 ‘호질(虎叱)’이 실려 있으며, 조선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신들과 밤을 지새우며 나눈 이야기를 모은 ‘옥갑야화(玉匣夜話)’에는 그 유명한 ‘허생전’이 나옵니다. 그 외에도 과학, 문화(마술, 문학, 미술, 연극, 음악), 역사, 유적, 의술, 제도, 종교, 지리, 철학 등 박지원이 5개월 동안 청나라에서 보고 들은 모든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박지원은 청나라에서 귀국한 이후 줄곧 「열하일기」의 저술에 몰두해 1783년에 저술을 마쳤습니다.. 「열하일기」는 특유의 해학과 풍자로 양반 사회의 허구성과 북벌의식을 비판해 조선 각계각층에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지식인들의 형식적인 글과 권위주의에서 탈피해 하층민들과 주고받은 농담을 그대로 쓰고 조선의 토속적인 속담을 섞는 등의 파격적인 형식에 환호하는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열하일기」에는 청나라와 서구의 신문물을 받아들여 조선이 발전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는데, 박지원의 북학사상은 개화사상에 영향을 줌으로써 전통 사상과 근대 사상을 잇는 다리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열하일기」는 단순한 기행문이 아니라, 중국의 풍속과 지리, 문화 등 갖가지 요소를 종합하여 기록한 백과사전이자 모든 계층을 아우르는 해학과 풍자가 담긴 작품으로, '조선 5000년 이래 최고의 명문장가', '조선의 셰익스피어'라고 불리는 박지원의 진가는 아직까지 유효하다고 하겠습니다.

 

열하일기, 박지원 지음, 돌베개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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