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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오늘

역사 속 오늘, 7월 23일: 130년 전, 갑오왜란 (갑오사변) 발발

해양맨 2024. 7. 23. 00:00

역사 속 오늘, 7월 23일에 일어난 일:

1882년 - 임오군란 발발

1894년 -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하고 고종을 포로로 삼음
1921년 - 중국 공산당 창당

2011년 - 중국, 원저우 철도 추돌 탈선 사고로 43명 사망

2014년 - 트랜스아시아 222편 추락 사고로 인해 48명 사망 (10명 생존)

2014년 - 튀니지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난민선에서 집단 학살로 110여 명 사망

2014년 - 중국 펑후 군도 부근에서 부흥항공 222편 항공기가 착륙을 시도하다가 58명의 사상자 발생

 

오늘의 묵상: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_갑오왜란

1894년 7월 23일, 130년 전 오늘,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하고 고종을 포로로 삼은 갑오왜란(갑오사변)이 일어났습니다.

 

1894년 1차 동학농민운동 당시 조선은 민란 진압을 위해 청에 출병을 요구했는데, 일본도 임오군란 때 청과 맺은 톈진 조약을 들어 동시에 병사를 보냈습니다. 이후 정부와 동학군이 화의를 맺어 더 이상 군대를 주둔할 명분이 없어지자, 일본은 철군을 거부했고 그해 7월 23일 결국 경복궁에 군대를 투입해 고종을 위협한 사건이 발생하는데 이것을 갑오왜란 혹은 갑오사변이라고 합니다.

 

1894년 7월 23일 자정 무렵, 일본군 제5사단 혼성여단장 오시마 요시마사가 출동 명령을 내리자 먼저 서울·의주와 서울·인천 사이의 전신이 끊겼고, 청나라군의 통신망이 차단됐습니다. 이날 일본 보병 21 연대가 경복궁 서쪽 영추문을 부수려고 폭약을 터트렸으나 비 온 뒤라 실패했고, 영추문을 경비하던 평양 기영병과의 교전 끝에 오전 5시 무렵 이들을 제압하고 영추문을 도끼로 부숴 열었습니다.

 

갑오왜란(갑오사변) 전개도.

 

광화문을 지키던 장위영 군사들과도 교전이 벌어졌는데 조선 병사들은 영추문을 통하여 들어온 일본군이 배후에서 쏘는 총에 맞아 쓰러졌습니다. 동문인 건춘문에서도 전투가 벌어졌고, 결국 경복궁을 점령한 일본군은 고종과 명성황후의 탈출을 막기 위해 궁궐을 철통같이 에워쌌습니다.

 

조선군이 이날 오후 2시까지 산발적으로 저항하자 왕을 협박해 명령을 내려 조선군을 무장 해제시키고, 운현궁에 있던 흥선대원군을 섭정으로 추대해 친일 정권을 출범시켰습니다. 하지만 약 20여 년 만에 재집권한 대원군은 일본이 민심을 통제하기 위한 얼굴마담에 불과하였고, 그를 국정에서 배제하였으니, 이에 대원군은 청군과 동학농민군에 밀서를 보내어 항일 연대를 꾀하다가 발각되어 결국 다시 실각하게 됩니다.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을 묘사한 판화. 우측의 백마를 탄 인물은 흥선대원군이다.

 

이것은 조선 역사상 4번째이자 병자호란 이후 약 250여 년 만에 왕궁이 외적에게 점령당한 대사건이었으나, 이듬해의 을미사변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은 사건입니다.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은 청일전쟁 이틀 전 조선조정을 장악해 후방을 다지고, 침략의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한 계획적인 도발이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고종과 명성황후를 비롯한 조선 지도부가 친러 방향으로 노선을 바꾸게 되지만, 이 모든 사건의 발단은 민란을 진압하기 위해 청나라군을 불러들인 고종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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