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오늘, 7월 26일에 일어난 일:
1945년 - '포츠담 선언' 베를린 교외 포츠담에서 미・영・중 3국의 수뇌가 전쟁종결 및 일본의 무조건 항복 등 발표
1950년 - 미군의 노근리 양민 학살
1993년 - 아시아나항공 733편 추락 사고
1996년 - 강원도 철원군 군부대 뒷산에서 발생한 산사태가 내무반을 덮쳐 군인 20명 사망
2008년 - 인도 아마다바드에서 폭탄테러가 발생해 56명 사망
오늘의 묵상: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 사고
1993년 7월 26일, 31년 전 오늘, 목포공항에 도착 예정인 김포공항발 아시아나항공의 여객기가 목포공항 착륙을 위해 접근 중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반도 야산에 추락하여 탑승객 116명 중 68명이 사망했습니다.
사고 당시 목포공항에는 강한 비가 내리고 있었고 사고기는 두 차례의 착륙 시도에 실패하고, 3번째 착륙 시도를 하기 위해 접근하다가 목포공항에서 10km 정도 떨어진 해남군 화원면 마산리의 야산에 추락했습니다.
사고 원인으로는 미흡한 공항 시설, 악천후, 그리고 기장의 무리한 착륙 시도를 꼽았습니다. 목포공항은 애초에 군용 비행장으로 설계되어 활주로 길이가 1,500m에 불과하여 민항 여객기가 취항하기엔 미흡한 규모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악천후로 시야까지 제한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조종사들은 계속된 접근 실패에 조바심으로 서둘러 착륙 시도를 했습니다.
결국 거듭된 접근 실패로 조바심이 난 기장은 다소 낮은 고도로 접근을 시도했는데, 결국 활주로 접근선상에 있는 산을 뒤늦게 발견한 후 충돌 4초 전 상승하려 했으나 252m의 봉우리를 넘지는 못했습니다.
이런 악천후의 경우 인근의 광주공항 등으로 회항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당시 아시아나는 정시 이착륙 세계 1위라는 점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던 때였고 조종사들도 이 기록을 유지하기 위해 무리하게 착륙을 시도한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습니다. 또한 위험성이 큰 목포행 노선에 목포공항 경험이 부족한 조종사만 두 명을 배치했으니 사실상의 인재였다고 보는 측면도 있습니다.
이 사고는 아시아나항공의 첫 번째 국내선 사고로써 최악의 인명손실 항공사고였습니다. 이 사고로 인해 목포공항의 여러 문제점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이를 대체할 공항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이는 무안국제공항의 건설로 이어졌습니다. 무안국제공항의 개항 후 목포공항은 폐항되어 현재는 오로지 군 전용 비행장으로만 사용 중입니다.
'역사속 오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역사 속 오늘, 7월 28일: 13년 전, 아시아나 화물기 공중폭발 (0) | 2024.07.28 |
---|---|
역사 속 오늘, 7월 27일: 13년 전, 한국 중부 집중호우로 69명 사망 (0) | 2024.07.27 |
역사 속 오늘, 7월 25일: 46년 전, 세계 최초 시험관 아기 탄생 (2) | 2024.07.25 |
역사 속 오늘, 7월 24일: 117년 전, 한일신협약(정미7조약) 체결 (2) | 2024.07.24 |
역사 속 오늘, 7월 23일: 130년 전, 갑오왜란 (갑오사변) 발발 (11) | 2024.07.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