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오늘, 8월 2일에 일어난 일:
1830년 - 루이 19세가 프랑스 국왕에 즉위했고, 재위 20분 만에 퇴위함
1916년 - 영친왕의 왕비로 일본 왕족 이방자 여사 결정
1964년 - 북베트남군 어뢰정이 미 해군 구축함 매독스호를 공격, 통킹만 사건이 베트남 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1976년 - 이란에서 이란발 한국행 대한항공 642편 화물기 화재로 추락해 승무원 5명이 전원 사망
1985년 - 미국 달라스 공항에서 델타 항공 191편 추락 사고로 승객 136명 사망, 생존자 27명
1990년 - 걸프 전쟁 발발 (다국적군이 이라크군을 섬멸하여 쿠웨이트의 독립을 회복)
2010년 - 파키스탄 홍수로 사망 1천100명, 수재민 2만 7천 명 발생
2014년 - 중국 장쑤성 쿤산의 금속공장 폭발로 65명 사망, 73명 부상
오늘의 묵상: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
1916년 8월 2일, 108년 전 오늘, 영친왕의 왕비로 일본 왕족 나시모토노미야 마사코(이방자 여사)가 결정됐습니다.
영친왕 '이은'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이며 종묘에 배향된 마지막 조선-대한제국의 황족입니다. 그는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인 고종의 일곱째 아들로서 순종과 의친왕, 덕혜옹주와는 이복형제입니다.
'이은'은 1900년 영친왕으로 책봉되었고, 1907년에는 20살 위인 의친왕을 제치고 병약하여 아들이 없었던 순종의 후계자인 황태자로 책봉되었습니다. 하지만 1910년 한일 병합 조약이 체결되면서 순종은 황제에서 왕으로 격하되고, '이은'도 황태자에서 왕세자로 격하되었지만 일본 황족에 준하는 예우를 받았습니다.
일제는 한일융화의 초석을 다지고자 대한제국의 황태자인 이은과 일본왕족 나시모토[梨本宮]의 장녀인 마사코(方子: 이방자 여사)를 정략적으로 혼인시킬 계략을 꾸미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1916년 8월 3일에 조선과 일본의 각 신문에 이은과 마사코의 약혼 기사가 실렸습니다. 이 결혼은 한일 병합 이전부터 이토 히로부미에 의하여 계획되어 이완용과 합의까지 된 사항이었습니다.
이들의 결혼식은 1919년 1월 25일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1월 21일에 고종이 승하하자 연기되어, 1920년 4월 28일에 도쿄 '이은'의 저택에서 결혼식이 거행되었습니다. 결혼식 당일에 마사코가 타고 있던 마차로 유학생 서상일이 사제폭탄을 던졌으나 터지지 않은 사건도 있었습니다.
비록 한일융화와 내선일체의 희생양이 된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였지만 둘은 금실이 좋았고, '이은'은 1940년 일본 육군 중장으로 진급하며 명예와 권세를 누렸습니다. 하지만 1945년 일본이 전쟁에 패하면서 황족들의 면세특권이 박탈당하였고, 거액의 재산세와 인플레이션으로 인하여 그들의 고난이 시작됐습니다.
일제 패망 이후 호적 소재지를 기준으로 한국인과 일본인이 나뉘게 되었는데, 한국인 남성과 결혼한 일본인은 한국인이 되었고, 일본인 남성과 결혼한 조선인은 일본 국적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은'과 '마사코'는 연합군 최고사령부에 재일한국인으로 등록하였지만 이승만 정권은 호적이 없다는 이유로 대한민국 국적을 인정하지 않아 그들은 무국적자가 되었고, 결국 1947년 10월 18일에는 '신적강하'를 당하여 평민이 되었습니다.
해방 이후 '이은'은 일본 유학, 일본군 장군이었던 점을 두고 친일파로 몰려 지탄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는 1960년에 미국에 가기 위해서 여권 발급을 대한민국 정부에 요청하였지만 성사되지 않아 결국 일본으로 귀화하였습니다.
그러나 박정희 정부 시절인 1963년 대한민국 국적을 회복하여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는 환국하였지만, 영친왕은 1970년 5월 1일 전신경련을 일으킨 채 의식을 잃고 성모 병원에서 창덕궁 낙선재로 옮겨져 사망하였습니다.
영친왕 사후 이방자 여사는 창덕궁 낙선재에서 기거하며 국가의 생활비 보조로 생계를 유지하며 장애인 사업 등 사회봉사에 정열을 쏟아 한국 장애인들의 어머니로 존경받았습니다. 말년에는 직장암으로 수술을 받은 후 일본에 있는 아들 '이구'와 함께 지내기도 하다가 1989년 4월 30일, 서울 창덕궁 낙선재에서 운명하였습니다.
'이은'은 이미 결혼 전에 '영친왕'이나 '황태자'에서 '이왕세자'로 격하되었기 때문에 그 배우자는 '왕비'나 '황태자비'가 아닌 '이왕세자비'로 불리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왕세자비' 보다는 '이방자 여사'라고 흔히 불렀는데 본인도 그렇게 불리기를 원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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