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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오늘

역사 속 오늘, 8월 30일: 141년 전, 제물포 조약 체결

해양맨 2024. 8. 30. 00:00

역사 속 오늘, 8월 30일에 일어난 일: 

1882년 - 조선이 일본과 임오군란의 뒤처리를 위한 제물포 조약을 맺다
1914년 - 제1차 세계 대전: 독일 공군기, 파리에 폭탄투하 (세계최초의 공습)
1972년 - 제1차 남북 적십자 회담이 평양에서 열림
2002년 - 제2차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 경의선. 동해선 철도 및 도로 연결 착공 관련 8개 항목 합의.
2005년 - 허리케인 카트리나, 미국 루이지애나주의 뉴올리언스 강타 (1000명 이상 사망, 2500명 이상 실종)

 

오늘의 묵상: 제물포 조약

1882년 8월 30일, 141년 전 오늘, 조선이 일본과 임오군란의 뒤처리를 위한 제물포 조약을 맺었습니다.

 

1882년(고종 19년) 7월 23일, 구식 군대가 신식군대인 별기군과의 차별 대우에 항의하면서 임오군란이 일어났습니다. 임오군란은 위안스카이가 이끄는 청나라 군대 3000여 명이 조선에 진주하여 흥선대원군을 납치하고 민 씨 정권을 다시 세우는 것으로 귀결됐습니다.

 

하지만 임오군란으로 일본 공사관이 방화됐고, 별기군을 훈련시키던 일본인 훈련관들이 살상된 것 등에 대한 보상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제물포에 정박한 일본 해군의 전함에서 맺어진 조약이 '제물포 조약'입니다. 주요 내용은:

  • 조선 측의 5만 원 배상
  • 일본 공사관의 일본 경비병 주둔
  • 조선 정부의 공식 사과를 위한 수신사 파견
  • 임오군란 주모자 처벌
  • 일본인 피해자 유족에게 위문금 지불

당시 일본은 배상금을 일본으로부터 빌려 충당토록 함으로써 일본이 조선을 강탈할 수 있는 미끼를 던져 주었습니다. 이로써 일본은 조선에서의 지위를 구미열강으로부터 인정받게 되었으며, 공사관 경비라는 미명 하에 일본군이 조선 땅으로 건너오게 되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제물포 조약의 규정에 따라 사과 사절로서 박영효, 김만식 등이 수신사로, 홍영식, 서광범 등이 수행원, 그리고 군왕의 밀명을 띤 민영익, 김옥균 등 15명이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 이들은 일본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고 100일간의 체제 비용도 전액 일본 외무성이 감당했습니다. 

이런 일본의 계략에 빠져 친일 성향을 갖게 된 이들은 귀국하여 일본의 힘을 빌려 개화와 정치개혁을 단행하고자 하였으니 이것이 갑신정변입니다.

 

1880년대 조선의 처지를 표현한 풍자화. 일본, 중국, 러시아가 조선이란 고기를 두고 '낚시놀이' 하는 장면..

 

임오군란 이후로 갑신정변, 동학혁명, 청일전쟁, 갑오개혁, 을미사변, 아관파천, 러일전쟁, 을사조약을 거쳐 경술국치에 이르기까지, 조선 왕조는 임오군란과 제물포조약을 기점으로 국운이 기울며, 한국역사의 시간은 그 어느 때보다 더 빠르게 흘러갔습니다 (아래 연도 참조).

 

▲ 임오군란(1882) : 개화 척사 / 상민수륙무역장정(조-청), 제물포조약(조-일)
▲ 갑신정변(1884) : 온건 급진개화파 / 한성조약(조-일), 텐진조약(청-일)
▲ 동학혁명(1894) : 폐정개혁 12개 조
▲ 청일전쟁(1894-95) : 시모노세키강화조약, 대만과 요동반도 획득
▲ 갑오개혁(갑오경장, 1894) : 1.2차 김홍집 친일내각
▲ 을미사변(1895) : 명성황후 시해 (10월 8일)
▲ 아관파천(1896) : 윤용선 친러내각, 이권 상실에 저항하여 독립협회 활동
▲ 대한제국 선포(1897) : 10월 12일 (조선왕조 멸망: 조선시대 마지막 왕인 고종은 대한제국 초대 황제가 됨)
▲ 러일전쟁(1904-5) : 포오츠머드강화조약
▲ 을사조약(1905) : 외교권 박탈 (11월 17일), 통감부정치(보호정치) 
▲ 고종퇴위(1907) : 헤이그 특사 사건 책임, 순종 즉위, 군대해산
▲ 한일합방(1910) : 경술국치, 8월 29일 (대한제국 멸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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