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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오늘

역사 속 오늘, 8월 5일: 1949년 - 선교사 헐버트 사망

해양맨 2023. 8. 5. 00:00

역사 속 오늘, 8월 5일에 일어난 사건은:

 

1392년 - 한반도에서 이성계에 의해서 조선 건국

1949년 - 선교사 헐버트 사망

1952년 - 대한민국 제2대 대통령·제3대 부통령 선거 실시, 대통령에 이승만, 부통령에 함태영 당선

1953년 - 판문점에서 남북 포로 교환 시작

1960년 - 부르키나파소가 프랑스로부터 독립
1980년 - 전두환이 대장으로 진급
1995년 - 무궁화 위성 1호 발사

2015년 - 인도 중부 마디아프라데시주에서 열차 2대가 탈선하여 32명 사망, 70여 명 부상
2018년 - 인도네시아 롬복 섬에서 규모 6.9의 강진으로 사망자 563명, 부상자 1353명 이상 발생

 

오늘의 묵상: 선교사 헐버트 사망

1949년 8월 5일, 74년 전 오늘, 선교사 헐버트가 사망했습니다.

 

호머 베절릴 헐버트(Homer Bezaleel Hulbert, 1863년 1월 26일 ~ 1949년 8월 5일)는 미국의 감리교회 선교사로서 조선에서 영어를 가르쳤던 교육자, 독립신문 발행을 도운 언론인, YMCA 초대회장, 한국어 연구와 보급에 앞장선 한글학자였습니다. 또한 고종을 도와 대한제국 말기 국권수호를 적극 도왔으며 일제강점기 한국의 독립운동을 지원한 독립운동가였습니다. 

 

외국인으로서는 최초로 건국공로훈장 태극장(독립장)이 추서 됐고 2014년 한글날에는 금관문화훈장이 추서 되었습니다. 대한제국 시대 언론인으로 활동했던 영국인 어니스트 배델과 더불어 헐버트를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외국인 1위에 꼽기도 했습니다.

고종 황제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얻은 외국인으로 고종황제로부터 세 번이나 특사로 임명되어 활동하였으며, 1907년 7월 헤이그 특사 사건을 빌미로 일본제국은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던 헐버트를 대한제국에서 사실상 추방하였습니다. 그는 헤이그 평화 클럽에서 일본의 부당성을 질타한 후 서울로 돌아오지 못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서재필, 이승만 등의 미주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에 힘을 보탰으며, 일본제국의 침략행위를 비난하며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였습니다.

1949년에 한국 정부의 초청을 받아 광복절 기념식에 참석하고자 86세의 노구를 이끌고 40년 만에 다시 내한하였으나 누적된 여독으로 입국한 지 7일 만인 8월 5일에 별세하였습니다. 조선과 의를 지켰던 사나이, "나는 웨스트민스터 성당보다도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는 평소 고인의 유지에 따라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역'에 안장되었습니다.

 

양화진 헐버트 박사의 묘

 

1942년, 워싱턴 한인 자유 대회에서. 호머 헐버트, 아메리칸 대학교 총장 폴 더글라스, 구미위원부 의장 이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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