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오늘, 1월 5일에 일어난 일:
1875년 - 민비 오라비 민승호 폭탄테러로 사망.
1924년 - 의열단원 김지섭, 일본 천황 폭살 기도 실패.
1957년 - 연희대학교와 세브란스의과대학이 연세대학교로 합병하다.
2003년 -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자살폭탄테러가 발생하여 23명이 사망하다.
2014년 - 방글라데시에서 반정부 시위가 발생해 100여 명이 사망하였다.
오늘의 묵상: 민승호 폭사
1875년 1월 5일, 149년 전 오늘, 조선의 수도 한성에서 민 씨 척족의 수장인 민승호가 인편으로 배달된 보따리를 열자 폭발하면서 자신을 포함 어머니와 아들이 즉사했습니다.
이것은 한반도 역사상 최초로 벌어진 폭탄 테러로 인한 암살 사건으로, 방이 통째로 날아갈 정도의 큰 폭발로 민승호의 양어머니이자 명성황후의 친모와 민승호의 아들이 함께 사망했습니다. 바로 앞에서 폭발을 뒤집어쓴 민승호는 온몸이 시커멓게 타들어간 채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죽어가면서 운현궁 쪽을 두세 번 가리켰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설에는 운현궁에 기거하는 대원군의 소행이라는 억측도 있었지만 이 사건은 현재까지도 여전히 미제사건으로 남아있습니다. 민승호의 아버지 민치구는 아들과 손자를 잃은 충격으로 이 사건이 일어난 지 2주 후 병사했습니다.
민치구의 아들인 민승호는 그의 누이가 흥선대원군과 혼인하여 대원군의 처남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민치록의 11촌 조카뻘이었던 민승호는 민치록 사후 그의 양아들로 들어갔는데 그 민치록의 딸이 바로 고종의 왕비 명성황후입니다. 이렇게 명성왕후의 양오라비가 된 민승호는 대원군의 처남이자 고종의 처남, 그리고 순종의 외숙부가 되어 민비척족의 수장으로서 막강한 권세를 휘두르며 형조판서, 병조판서 등을 지냅니다.
당시 조선은 민 씨 일가가 정권을 잡고 있었고 민왕후와 민승호(1830∽1874)가 그 중심에 있었는데 병조판서 민승호는 대원군이 물러나자 국정 주도권을 쥐었습니다. 따라서 대원군의 실각 과정에서 민승호가 고종의 편에 서서 자신을 배신했다고 여긴 대원군이 이 사건을 저질렀다는 소문이 떠돌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고종은 대원군을 수사하지 않고 대원군의 측근인 신철균을 체포하여 민승호 테러와 흥인군(흥선대원군의 셋째 형)의 집 방화혐의로 능지처참에 처했으며 삼족을 멸하는 것으로 이 사건은 마감되었습니다.
이후 민승호의 대가 끊기자 민태호의 아들 민영익을 양자로 들였으니 그가 바로 1882년 임오군란 때 민 씨 척족의 거물로 지목되어 오른쪽 귀가 잘리고 칼에 무수히 찔렸지만 명성왕후의 도움으로 미국인 의사 알렌에게 치료를 받아 구사일생으로 회생한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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