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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오늘

역사 속 오늘, 7월 15일: 606년 전, 양녕대군이 폐세자가 됨

해양맨 2024. 7. 15. 00:00

역사 속 오늘, 7월 15일에 일어난 일:

1070년 - 예루살렘이 로마의 티투스에 의해 점령됨

1418년 - 양녕대군이 폐세자가 됨.

1597년 - 칠천량 해전 발발

1910년 - 알츠하이머병이 명명됨
1959년 - 제1차 원자력 학술회의

1968년 - 중학교 입시 시험 폐지
2016년 - 터키 쿠데타 미수 사건 (터키 민주주의의 날로 선포됨: 2017년)

 

오늘의 묵상: 양녕대군

1959년 7월 15일, 606년 전 오늘, 양녕대군이 폐세자가 되었습니다.

 

양녕대군태종원경왕후 민 씨의 장남이자 세종의 큰형입니다. 엄밀히 따지면 태종과 원경왕후의 4남이지만, 양녕대군 위로 아들 3명이 더 있었지만 모두 어린 시절에 요절했기 때문입니다.

선대왕 태조와 부왕 태종의 호색 및 냉혈 성향만 물려받은 인물로, 술과 사냥, 여자 등 온갖 사고를 쳐 부왕과 조정의 눈밖에 나더니 유부녀인 '어리'와의 간통 사건으로 폐세자가 되어 세자의 지위를 잃고 대군으로 격하되었습니다. 그를 대신하여 훗날 세종대왕이 되는 셋째 동생인 충녕대군이 왕세자로 책봉됩니다.


양녕대군이 이렇게 된 데에는, 딸 셋을 제외한 아들 셋을 낳자마자 잃었던 이방원과 원경왕후 내외에게 양녕대군은 단순한 장남을 넘어선 특별한 아들이었기 때문에, 너무 떠 받들어 키운 자식 양육 방식에 문제가 있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피로 물든 왕좌를 탐하기 싫어서, 아니면 충녕대군(세종)의 영민함을 알고 왕위를 양보하려고 했는지, 어쩌면 셋 다일수도 있지만, 양녕대군의 도를 넘는 악행에 아버지 태종은 결국 그를 폐위할 때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양녕대군 묘(서울 동작구 상도동).

 

1453년(단종 1) 세종의 둘째 아들인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에게서 왕위를 찬탈하는 계유정난이 일어났습니다. 세종의 유지를 받들어 단종을 보좌하던 김종서, 황보인 등이 살해되었고, 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성삼문, 박팽년 등이 단종 복위를 꾀하였다가 제거되었고, 금성대군도 역모죄로 죽고, 결국에는 단종도 폐서인 되어 죽음을 맞았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양녕대군은 수양대군 편에서 자신의 조카인 안평대군의 사사를 적극 주장하였습니다. 즉, 정인지가 관료들의 구심적인 역할을 했다면 양녕대군은 종친의 어른으로서 수양대군의 권력 쟁탈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후 양녕대군은 편안한 삶을 이어가다, 1462년(세조 8)에 68세의 나이로 병사하였습니다. 그의 묘는 서울특별시 동작구 양녕로(상도동)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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