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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오늘

역사 속 오늘, 8월 25일: 59년 전, 한일협정 반대 시위 진압 군인 투입

해양맨 2024. 8. 25. 00:00

역사 속 오늘, 8월 25일에 일어난 일: 

1936년 - 일장기 말소 사건: 동아일보가 손기정 선수의 사진에서 일장기를 지운 채 보도
1965년 - 한일협정 반대 시위가 확산되는 고려대학교에 무장군인 투입

1972년 -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를 경복궁으로 이전
1979년 - 태풍 주디호, 대한민국의 남부 지방을 강타해 130여 명 사망·실종

2009년 - 나로우주센터에서 우주발사체 나로호 발사, 실패

 

오늘의 묵상: 한일협정 반대 시위

1965년 8월 25일, 59년 전 오늘, 한일협정 반대 시위가 확산되는 고려대학교에 무장군인이 투입되었습니다.

 

한일기본조약(한일협정)은 한국과 일본 간에 단절된 국교 정상화와 전후 보상문제의 해결을 위해 1965년 6월 22일 조인, 8월 14일 국회 통과, 12월 18일에 발효된 조약입니다. 두 나라의 수교는 1905년 을사늑약(을사보호조약)을 체결한 지 60년 만에 이루어진 한일협약입니다. 

 

1951년부터 14년에 걸쳐 진행된 한일회담은 전후 세계사에서 가장 길고 험난한 외교협상 중 하나로 꼽힙니다. 1962년 중앙정보부장 김종필은 일본 외무장관 오히라 마사요시를 만나 윗 내용의 협상에 합의하였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너무나 굴욕적인 협상이라며 한일회담을 반대하는 시위가 계속되었고, 이러한 시위는 1964년 6월 3일에 절정을 이루게 됩니다(6.3 시위).

 

이런 강력한 반대 투쟁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정권은 1965년 6월 22일 ‘청구권과 어업, 재일동포 법적지위에 관한 협정’에 정식 조인했습니다. 이어 8월 14일 여당만의 일당 국회 본회의에서 한일협정 비준 동의안이 통과됐습니다.

 

이에 개학과 함께 학생들의 비준무효화운동이 대규모로 일어났고, 1965년 8월 25일 저녁 박정희 대통령은 특별 담화를 통해 학생데모 근절을 위한 학교 폐쇄 등 강경 대응을 발표하고 다음 날인 26일 서울 일원에 위수령을 선포했습니다.

 

고려대에 투입된 무장 군인들. '사상계' 1965년 10월호.

 

1965년 8월 24일 서울대·고려대·연세대 학생들이 시위를 전개한 거리에 방독면을 쓴 무장 군인들이 투입되었습니다. 8월 25일 오후에는 수도경비사령부 소속 무장 군인 500여 명이 ‘정당방위’라는 이름으로 고려대 교내로 난입해 학생들을 무차별로 구타하고 연행하고, 중앙도서관 유리창을 깬 후 자유열람실 안에 최루탄을 난사하기도 했습니다.

 

시위 진압에 나선 무장 군인들, '사상계' 1965년 10월호.

 

무장 군인들의 학원 난입은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사상 초유의 일이었습니다. 곧이어 9월 초, 시위 주동 학생과 소위 ‘정치교수’에 대한 처벌에 미온적이라는 이유로 고려대와 연세대에 무기 휴업령을 내리고 학사 감사를 실시했습니다. 이러한 휴업 조치는 우리나라 반세기 대학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박정희 정권은 시위에 대한 발본색원 작전으로 한일협정에 비판적인 학생, 예비역 장성, 언론인, 야당 정치인 등을 구속했습니다. 당시 한일협정 반대운동을 주도했던 학원 내 정치 동아리들도 강제로 해체되었고, 학원과 사회를 짓누르고 있던 위수령도 9월 25일 해제되면서 한일협정 반대 시위는 종결되었습니다.

한일협정은 1965년 12월 18일 한일 양국이 비준서를 교환함으로써 정식 발효되어 해방 이후 20년 만에 한일 간 국교가 완전히 정상화되었습니다.

 

 

한일협정 국회 통과와 반대 시위

 

역사 속 오늘, 8월 14일: 한일협정 비준 동의안 국회 통과

역사 속 오늘, 8월 14일에 일어난 사건은: 1592년 -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대첩 승리 1945년 -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 일본의 무조건 항복 수락 1945년 - 중화민국과 소련, 중소우호동맹조약 체결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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